바울은 “하나님은 한 분 이시다”(갈 3:20)고 말하였다.
“한 분”의 하나(One)는 일반적인 숫자적 의미가 아니라 절대적인 의미로써 단일성(일체성)의 개념이다(道卽一). 또한 모든 숫자들의 원천이고 근원으로서의 하나(One)이며, 그 자체는 시작도 끝도 없는 전체로서의 하나(不二)이다. "하나님은 나누어 질 수 없는 불가분(不可分)의 한(One) 분”(마 23:9)으로, 물질세계의 특징인 일체의 분별을 초월하는 근원(靈)이시다. 하나님은 “생성과 변화”*(成住壞空)의 근원(One)이시며, 인격과 비 인격 등의 이원적 사유를 넘어서기에 니체는 “유일한 인격적 존재로서의 神”*은 죽었다고 사망선고를 하였다. 따라서 神과 하나(One)가 되면 모든 것이 성스러우며, 불행 속에서도 춤을 춘다.
우주의 도리를 깨달은 성자(聖者)들은 “하나(One)인 진리”를 말할 때 하나님, 부처, 道, 진아(眞我, 靈) 등으로 표현하였다. 이러한 표현도 유한한 언어에서 오는 한계를 극복할 수 없기 때문에 “진리(道)는 말로 표현할 수 없고, 이름을 붙일 수 없는 것이며”(道可道 非常道, 道德經 1장), 유다도 “예수가 진리를 그 어떤 이름으로도 부르지 않았다”(유다복음)고 하였다. 時空을 초월한 “하나(One)인 하나님”(롬 3:30)에 대한 “이원성의 언어 표현과 모든 분별 개념”(ego)은 다만 “비유와 상징”이다. 따라서 하나님(One)은 대상으로서 외적(外的) 존재가 아니기에 인간의 원죄로 인한 타락과 희생제물은 있을 수 없다(요 17;21).
유일신(唯一神)의 하나님(생명 energy)은 여럿에 대립하는 하나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여럿과 하나의 대립을 초월한 “절대적 하나”(靈)이다. “만유가 神이며”(고전 15:28), “神이 하나(One)인 것을 여실히 알지 못하는 것이 이른바 깨닫지 못함이다”(대승기신론). 장자(莊子)도 “만물을 다 그대로...여겨 그런대로 모두 감싸주는 것”(제물론)인 하나의 진리를 강조하였다. “온 우주에 존재하는 것은 오직 神(그리스도)뿐이며”*(막 12:32), 예배하는 자는 영(靈)과 진리로 예배(프로스퀴네오)하여야 한다”(요 4:24). 즉 “대상의 神”*에게 예배할 것이 아니라, 각자 자신이 하나(One)의 영(靈, 하나님)과 진리(그리스도)가 되어야 한다.
* 하나님이 생성과 변화(成住壞空)의 근원(One)이라는 것은 대상의 神(他者)이 아니라, 생성의 과정을 일으키는 변화이며, 공중의 새를 기르고, 들의 백합화를 자라게 하시기 때문이다(마 6:26). 일체만유가 神(佛)과 다르지 않는 불이불(不異佛)이므로 우리는 모든 것을 우주 에너지(氣)인 神(佛, One)에게 맡겨야 한다(마 6:10, 막 14:36). 마찬가지로 힌두교의 하나님(Brahman: Atman)도 이 우주의 창조자, 유지자, 파괴자이며, 모든 것의 근원이자 끝으로서 모든 것의 모든 것이다(all in all). 따라서 예수는 유대인의 유일신(唯一神)과 같은 타자(他者)의 神을 “마귀, 살인한 자, 거짓말쟁이, 거짓의 아비”라고 말씀하셨다(요 8:44).
* 니체가 비판한 “유일한 인격적 존재로서의 神”(一神論)은 전체로서 하나(One)가 아니라 神을 제한하며, 또한 비인격적인 존재와 주객(主客)을 나누는 이원적인 속성이며 대상적이다. 스피노자는 神의 인격성을 제거시키기 위하여 神을 자연이라 하고, 신학자 틸리히는 인격신보다는 궁극적 관심, 존재자체와 존재의 근거라고 하였다. 사신(死神)신학자들은 인격신의 죽음을 선언하고 불교의 空, 老子의 道와 같은 비인격적인 神을 주장하였으며, 이에 따라 인격과 비인격 신관의 조화를 이룬 과정신학, 道(易)신학 등의 현대신학이 새롭게 나왔다. 형상이 없는 무형의 神은 마치 전류와 같은 것으로서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느낌으로 느낄 수 있다.
* “온 우주에 존재하는 것은 오직 神(그리스도)뿐이다”는 진리는 “부처(佛性)란 결국 우주를 몸으로 한다”(十方如來 法界身)는 불교와 통한다. 아인슈타인은 “입자의 질량은 파동의 에너지와 동일하고, 우주는 따로 떼어질 수 없는 에너지의 역동적인 그물(網)이다”(E=mc²)라는 하나(One)의 진리를 증명하였다(상호 연관성). 이러한 과학적으로 알 수 없는 에너지의 실체는 “둘이 아닌 순수 에너지(氣)”인 神性(佛性)이다. 용수(龍樹)보살은 佛性 외는 아무것도 없다는 하나의 진리를 “인연으로 생긴 모든 것은 곧 바로 空이다”(因緣所生法 我說卽是空, 중론)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눈에 보이는 모든 현상은 헛되고 헛된 허상이다(覺後空空無大天, 전 1:2).
* 하나님은 “대상의 神”(他者)으로서 벌(罰)이나, 용서하는 신화속의 인물과 같은 것이 아니라, 조화 속에서 “인과(因果)의 작용”(神의 뜻, 요 9:3)을 가능하게 하는 전체로서 하나(One)이다(카르마 법칙). 예수는 둘이 아닌 하나님(One)이 아니라 “대상의 神”(데오스)을 섬기는 유대인들을 향하여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요 8:44)라고 질책하셨다. 神의 카르마(業) 법칙(요 8:11)은 행위와 생각을 결과에 연결시키는 “선한 행위는 선한 결과를 낳고, 악한 행위는 악한 결과를 낳는 것”(善業善果 惡業惡果)이다. 악한 자는 죽은 후 자기가 뿌린 씨의 인과응보로써 지옥에 빠지지만, 타자인 神이 악한 자를 지옥으로 던지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