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무릇 자기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요 무릇 버림당한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16:18)고 말씀하셨다.

 

  일반적으로 아내(남편)를 버리고 다른 여자(남자)와 결혼하는 것은 간음이다라고 해석한다. 그러나 예수는 변하는 도덕적인 것’(ego)이 아니라 불변의 진리를 설명하고 있으며, 결혼은 육적인 결혼이 아니라 영적인 결혼에 대한 비유이다. 내면의 자기 아내’(예수, One)를 버리고 밖의 이원성인 다른 데’(에테로스) 장가드는 자는 진리에 대한 간음이다. 왜냐하면 진리는 둘이 아닌 하나(One)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원성을 만들어 내는 자아(ego)를 영적 자아(One)와 동일시하여 주객, 자타를 나누는 이원성에 집착함으로써 고통을 초래한다.


  우리의 마음이 청결하게 될 때 실재(One)인 하나님의 광명을 볼 수 있으며(5:8), 모든 것은 하나님의 현현(顯現) 즉 신적이며 영적인 것인 표현임을 자각하게 된다. 하나님(부처님)계시지 않는 곳이 없고’(열반경), ‘모든 것 중에 모든 것모든 것이 하나님”(4:6)이므로 우리도 본래 하나님이며, 부처님이다(本來是佛, 10:34). 일시적인 파도가 바닷물인 것처럼 실상을 있는 그대로 알고 보는 자(如實知見) 깨어난 자(13:23)는 신성(神性)을 발견함으로 천국(불국토)을 체험하며, 또한 하나님만이 실재요, 다른 일체의 것은 환영으로 여긴다.


  하나님은 유기적 관계인 우주의 다원성을 포용하지 않을 수 없으며, 전체(All) 가운데 다 들어 있을 수밖에 없다. 즉 우주가 나요, 내가 우주이고, 하나의 티끌이 우주요, 우주가 바로 한 티끌이다(萬物如我一切). 이러한 개체이자 전체”(고전 3:22-23)인 진리는 범신론(汎神論)적이며, 예수는 우주적 존재로서 만물은 그로 말미암아 창조되고, 유지된다(1:3). 따라서 우리는 진리의 현현(顯現) 다양성을 긍정하여야 하며, 금덩어리로 여러 가지 모양의 물건을 만들면 모양은 달라도 모두가 다 진금(眞金) 아닌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