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말씀하셨다. “너희가 이 세상적인 것에 대하여 금식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찾을 수 없으리라. 너희가 참된 안식으로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면 너희는 아버지를 볼 수 없으리라.”(도마복음 27)

 

  세상적인 아집에 의한 이원성의 허상(ego)을 소멸하고, 비이원성의 가난한 마음(無我, 無己)이 되지 않으면 실상의 하나님 나라를 찾을 수 없다(5:3). 안식일(샵바트)은 종교 행위를 위하여 교회에 모이는 것이 아니라 옳고 그름의 분별 망상을 버리고, 사실 물질(육체)은 본래 없으며(諸法空), ‘오직 신(진리) 뿐이다고 하는 깨달음으로 청결한 마음(생명)을 직관하는 영적인 날이다(5:8).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은 이미 지금 여기에 있는 비이원성의 진리(참나)를 찾기 위하여 세상적인 이원성의 아집(거짓 나)을 끊어야(금식하여야) 한다는 것이다(心齋, 장자).


  예수와 부처의 가르침은 나는 누구인가?’를 통하여 분별 시비로 가득 찬 몸과 마음의 ’(거짓 나)를 제거하고(금식하고), 참다운 자기(참나)인 하나의 신성(불성)을 자각하는 것이며(本來是佛, 1:20), 하나님(부처님)과 하나(One)가 되는 길이다(入不二 法門, 17:21). 클레멘트는 모든 가르침 중에 가장 위대한 것은 너 자신을 알라는 것이며, 자신(神性)을 알 때, 당신은 신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마하르쉬는 자기를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며, 행복의 열쇠는 거기에 있다고 하였다. 몸 밖에서 복을 구하는 것은 인간 세상의 생멸법(生滅法)이므로 무익하며, 내면의 신성(천국)을 찾아야 한다(17:21).


  크리슈나무르티는 진리의 열쇠는 자신 안에 있으며, 따라서 자기 응시를 통한 자기 인식 속에서만 이 시간에 속하지 않는 영원하고 불멸한 진리(참나)를 발견할 수 있다고 하였다. 자기의 신성(참나)을 자각한 자는 우주와 하나(One)가 되어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이다”(고후 6:10). 인위적인 행위(有爲)가 완전히 씻겨 나가면, 즉 무위적 행위(자연의 도리)를 한다면 그의 비어있음을 통해 하나님의 순수 에너지가 회복되어 전체로서 하나인 신적 존재(참나)로 참된 안식 된다. 현대물리학은 하나가 곧 모두’(一卽多)임을 카오스(Chaos) 이론의 나비효과(butterfly effect)로서 설명하고 있다.


  바울은 한 사람(거짓 나)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한 사람(참나)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5:19)고 하였다. 우리는 아담 한 사람이 불순종함으로 인해 원죄를 가지게 되었고 예수가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 된 것이 아니라, 이원적인 거짓 나(개체성)와 비이원적인 참나(보편성)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종교의 목표인 나는 신과 하나다”(10:30)고 하는 진리(참나) 체험의 안식은 내면에서 샘물처럼 솟아오르는 자유와 기쁨을 맛보며 육체도 건강하게 한다(天上天下唯我獨存).


  현대 물리학의 우주는 오직 장() 에너지뿐이다고 하는 에너지일원론(energy一元論)은 전체와 부분, ()과 육체, ()와 무()가 관계 속에서 상호의존한다는 불이(不二)의 연기(緣起)사상과 통한다. 고대 철학자인 파르메니데스(Parmenides)존재는 통일성을 갖춘 하나이며, 하나의 존재는 일라(一者)고 주장하였다. 동학의 기본사상인 사람이 곧 하늘’(人乃天)과 신인일체(神人一切)인 만물일체의 원리는 통전적(統全的) 세계관인 이것도 저것도’(both-and)이다. 동양의 불이론(不二論), 서구의 양자택일적 세계관인 이것이냐 저것이냐’(either-or)와는 상반된다.


  따라서 천지 우주가 본래로 하나의 생명이며, 한송이 꽃(世界一花), 하나의 몸이다하나의 그리스도’(고전 12:12)를 분명히 자각할 때 즉, 안식일을 지킬 때 정치, 사회의 모든 갈등은 저절로 해소되어지며, 종교들 간의 회통(會通)과 화해가 이루어진다. 이사야는 너와 나가 사라진 무아(無我)의 하나 된 경지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그때에 이리가 어린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아이에게 끌린다”(11:6).